하나도 안 아픈데 신경치료를 꼭 해야 하나요? 안 아픈 충치가 더 무서운 이유
치과 의사로서 진료실에서 정말 자주 듣는 질문 중 하나를 꼽으라면 바로 이겁니다.
"원장님, 저 진짜 하나도 안 아픈데요? 그런데도 신경치료(근관치료)를 꼭 해야 하나요?"
엑스레이를 보면 이미 충치가 치아 깊숙이 침범해 신경이 다 손상되어 있는데, 환자분은 전혀 아프지 않다고 하니 당연히 의아하실 수 있습니다. 혹시 과잉 진료는 아닌지 덜컥 겁이 나기도 하실 텐데요.
안녕하세요.
청라치과의원 치의학 박사, 나종찬 원장입니다.
오늘은 왜 '안 아픈 충치가 더 무서운지', 그리고 '통증이 없어도 왜 신경치료를 해야 하는지' 이해하기 쏙쏙 쉽게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안 아픈 충치가 더 무서운 이유 : '급성'과 '만성'의 차이
치아 이야기를 하기 전에, 우리 몸이 질병을 받아들이는 방식을 이해하기 쉽게 일상적인 '피부 상처'로 예를 들어볼게요. 우리 몸의 모든 질환은 진행 속도에 따라 크게 급성과 만성으로 나뉩니다.
1. 무릎이 팍 찢어지는 상처 (급성 질환)
길을 가다 콰당 넘어져서 무릎 피부가 팍 찢어지면 어떤가요? 순간적으로 엄청난 통증이 밀려오고 피가 나며 비명이 절로 나옵니다. 세포가 갑작스러운 충격을 받아 비상벨을 세게 울리기 때문이죠. 치아도 마찬가지로 충치가 갑자기 빠르게 진행되거나 치아가 깨지면 극심한 통증(급성)을 느낍니다. 이럴 때는 환자분들이 먼저 치료의 필요성을 느끼고 치과를 찾으십니다.
2. 나도 모르게 긁어서 피가 나는 상처 (만성 질환)
반면, 피부가 가려워서 슬슬 긁을 때를 생각해 보세요. "에이, 조금 가렵네" 하면서 아픈 줄도 모르고 무심코 계속 긁습니다. 그렇게 천천히 자극이 누적되다 보면, 어느 순간 나도 모르는 사이에 피부가 다 벗겨져 피가 나고 큰 상처가 생겨 있는 걸 발견하게 됩니다.
치과에서 말하는 만성 치아우식(충치)이 바로 이 경우입니다. 어떤 질병이든 '천천히' 진행되면, 우리 몸은 그 변화에 서서히 적응하느라 비상벨(통증)을 울리지 않습니다. 결국 통증도 없이 치아 속에서 심하게 골아가게 되는 것이죠.
통증이 없는데 신경치료를 해야 하는 진짜 이유
충치가 야금야금, 아주 천천히 치아 내부로 파고들면 치아 속 신경 세포들은 '아프다'는 신호를 보낼 겨를도 없이 서서히 죽어갑니다.
신경이 완전히 죽어버린 상태: 신경이 살아있어야 아픔도 느끼는데, 신경이 이미 죽어버렸으니 환자분은 당연히 아무런 통증을 느끼지 못합니다.
방치하면 생기는 일: "안 아프니까 치료 안 해야지" 하고 방치하면 어떻게 될까요? 죽은 신경관 속으로 세균이 번식해 치아 뿌리 끝을 지나 잇몸 뼈를 녹이기 시작합니다. 나중에는 잇몸이 볼록하게 붓고 고름이 차오르며, 심하면 치아를 뽑아야 하는 상황(발치)까지 가게 됩니다.
즉, 지금 통증이 없는 건 치아가 건강해서가 아니라, 치아 신경이 소리 소문 없이 죽어서 비명을 지르지 못하는 상태인 것입니다.
나원장의 한마디
치과 치료에서 '통증의 유무'는 치료 여부를 결정하는 절대적인 기준이 아닙니다. 통증이 없더라도 정밀 검사(X-ray)를 통해 신경까지 감염된 것이 확인되었다면, 더 큰 화(잇몸뼈 소실, 발치)를 막기 위해 반드시 근관치료(신경치료)를 진행해야 합니다.
"아프지 않을 때 치료하는 것이 치아를 살리는 가장 빠르고 현명한 지름길입니다."
조금이라도 치아 상태가 의심된다면 미루지 마시고 정기검진을 통해 치아 건강을 지키세요!